서안,
오히려 장안이라고 해야 역사적인 느낌을 훨씬 더 받는다.
화산에서 1박할 예정을 취소하고 바로 서안으로 출발하였다. 화산에서 5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산에 턱하니 걸쳐져 있어 조금 후면 어두워질 태세이다. 썰렁한 주차장에 '경' 자를 단 차를 그냥 두기 뭐해 주차장앞 가게에 30위엔을 주기로 하고 가게앞에 주차를 했는데 1박없이 내려오니 가게주인이 여간 실망하는 눈빛이다. 당일로는 10위엔을 주기로 했으니 그럴만도 해 보인다. 그들과 무자년 춘절 새해인사를 간단히 하고 서안으로 출발~~
화산에서 서안까지는 약 120km 정도로 고속도로가 워낙 소통이 잘되고, 화산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 약 10분도 되지 않아 화산 매표소에 도착하기 때문에 서안에서 화산까지는 대략 90분 정도 계산하면 될 듯 하다.
서안은 특별히 호텔을 잡지 않고 서안에 있는 민박집을 이용하였다. 서안에는 3곳 민박집이 있었는데 한곳은 아침식사를 제공하지 않고, 다른 한곳(귀락원)은 수리중으로 일시 휴면상태여서 아침을 주고, 카페가 매우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서안도우미 민박집을 선택하였다. 민박집은 운남성 쿤밍과 리장이후 세번째 이용인데, 리장 J게스트하우스와 다른점은 살림하는 집에서 기거하는 방식이라 행동하는데 조금은 더 불편했지만 어느 민박집의 사장님처럼 이곳도 친절하였고, 아침밥도 정갈하고 맜있게 해주셔서 좋았다. 우리네처럼 가족 3인이 움직이는 경우는 가격차이도 많지 않으면서 자유스럽게 드나들고 행동할 수 있는 호텔 또는 유스호스텔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든다. 중국이 초행이거나 한국어밖에 되지 않는다면 이런곳은 정말 금상첨화......
원래 일정은 화산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서안 시내로 들어가기전에 병마용-진시황릉-화청지- 대연탑을 두루 보고 민박집으로 들어가 숙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늦은 오후에 출발하다보니 그 다음날 다시 길을 거슬러 나오게 되었다. 민박집에서 병마용까지는 67km 1시간24분 소요되었으나, 이는 중간에 길을 한번 잘 못 들어 나갔다 들어 오는 바람에 30여분 정도를 허비하였던 것도 포함된 것이라 대략보면 50km로 시간은 1시간 정도 소요되었던 것 같다.
먼저 안쪽에 있는 병마용을 보고 진시황릉으로 와서 왕릉을 올라가 보고 그 다음 화청지를 찾아 들었다.
병마용
병마용의 ‘용’이란 고대 중국에서 죽은 사람을 사후에도 지켜 주기 위하여 무덤에 묻었던 상을 말한다. 병사나 말을 본뜬 병마용은 도자기로 만들었으며, 그 모두는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인 진의 시황제를 위하여 만들어졌다. 이들 대부분은 동쪽을 향해 마치 임전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처럼 매우 가지런하게 배치되어 있다.
병사들이 서 있는 곳은 지면보다 약 5m 낮고, 그 바닥에는 벽돌이 가득 깔려 있다. 제1호갱의 앞부분에는 도랑 같은 통로가 동서 방향으로 10개 정도 평행하게 만들어져 있고, 이 통로를 따라 병사들의 진형이 늘어서 있다. 그것은 고대의 병법서 그대로이며, 중국 통일을 이룬 강대한 진나라 군대의 전법을 엿볼 수 있다.
그럼 진시황과 병마용에 대한 주한중국대사관의 간단한 소개를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진 시황은 황제의 보좌에 오른후 얼마 안되어 현 섬서성 서안시 림동 려산 북쪽에 자기의 릉묘를 수건하기 시작했다. 묘지는 산을 등지고 강물과 면한 풍수가 아주 좋은 곳이였다. 릉원은 내외 두개 성으로 나뉘었는데 지상 건축은 이미 사라졌다.
릉묘 는 수건시 높이가 120미터, 부지의 둘레의 길이가 2167미터였다. 2천여년의 풍습과 파괴를 거쳐 현재 릉묘의 높이는 76미터, 부지의 둘레의 길이는 2천미터로 되었다.<사기>의 기재에 따르면 [릉묘는 축수층까지 깊이 팠고 상층은 견고화시켜 관을 놓을수 있으며 묘실벽에는 일월성신과 산천지형도가 그려져 있고 묘중에는 관저와 백관위차가 세워져 있으며 진귀한 진주와 보물로 가득찼으며 고분의 인어 기름으로 만든 등잔불이 켜져있으며 많은 암살무기들이 중요한 곳들에 설치되어 있어 수시로 도적들의 침입을 막을수 있다.>
2천여년의 역사적인 부식은 진시황릉의 최초 규모를 줄여놓았지만 오늘도 여전히 황제릉의 기백을 과시하고 있다. 1974년 중국 문화재 고고학 사업자들은 진시황릉에서 동쪽으로 1.5키로미터 되는 곳에서 세개의 대형 병마용 구덩이를 발굴해 냈다. 이 세 구덩이는 도합 2만여평방미터로서 도자기로 된 병사와 말 거의 8천점과 목제 전차 100여대, 청동병기 4만여점이 있었다.
웅장한 군사진영은 사람을 놀랍게 했으며 더욱 사람을 놀래운 것은 출토된 이 6천여점의 병사 도자기용이 진짜 사람모양 크기이고 얼굴모양이 하나도 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로 공예 걸작이 아닐수 없었다. 진시황릉에서는 또한 동으로 된 차, 동으로 된 말과 많은 절세의 진귀한 보물들도 발견해 냈다.
진시황릉은 1987년<세계문화유산명록>에 수록되었다.
병마용은 주요 외국 사절단들이 다 거쳐가는 중요 관광지중에 하나이다. 1974 샘물을 파던 한 농부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되었던 곳으로 세계 8대 불가사리 중의 하나, 20세기 최대 고고학의 발견 이라는 둥 찬사를 한 몸에 받은 곳이다. 그래서 늘 궁금했다. 사진으로 본 병마용은 엄청난 규모, 정말 엄청난 줄 알았고, 조각상 또한 대단한 말 그대로 모든 조각상이 바로 꿈틀거리면서 움직일 것 같은 완벽한 생동감이 있는 줄 알았다. 모든 조각상의 얼굴이 다 다를정도로 정교하고 표현력이 대단하다고 해서 자뭇 기대도 컷다.
그러나 실제로 본 병마용은 너무 기대가 컷던지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역시 난 문필가는 못되는 이유가 있다. 공장에서 찍어내지 않는 이상 모든 조각은 다를 수 밖에 없고, 당시 군주의 위용은 참으로 대단한 시대였으니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 되는 시대에 저 정도의 막노동(일단 예술적 가치, 역사적 가치를 두고 한 말이 아니니 이해해 달라)은 그렇게 불가사리한 것도 아닌것처럼 보인다. 다만 나에게는 더 신비하고 신기로운 것은 2000년이 넘도록 이 것이 발굴되지 않고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다. 병마용의 상당한 사실적인 묘사 덕분에 당시 시대 모습, 전략, 전쟁, 의복 등 여러가지를 이천년이 지난 지금에서 볼 수 있다는 역사적 가치가 중요하다. 그러나 나같은 무식한 사람한테는 그저 병마용에 왔고 왔다는 기념으로 사진 한 방 찍고 마는 그런 역사적인 장소중의 하나로 기억되어 버리고 만다.
쓰잘데기 없는 얘기는 이 쯤에서 접고 사진으로 간단히 돌아 보도록 하겠다.
서안시내와 외곽으 모습이다.
위 사진중 아래 부분으로 삐죽 삐져나온 연두색 트랙은 길을 잘 못들어 한참이나 내려갔다가 되돌아 온 길이다. 병마용과 진신황릉, 화청지는 서안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여행을 한다면 동쪽코스는 한꺼번에 돌아 봐야 되는 곳이다.
서안시내 관광은 대연탑, 섬서성 역사박물관, 장안성곽 정도.... 장안성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성이상으로 크다. 장안성 중심 종루옆에는 이슬람 시장이 있는데 중국이 처음이라면 그냥 호기심삼아 가볼만하겠지만 우리네처럼 중국 사는 사람이라면 굳이 갈 필요가 없는 곳이다.
병마용과 진시황룡은 거의 붙여 있고, 화청지는 4km정도 떨어져 있다.

병마용과 진시황릉의 모습, 왼쪽이 병마용인데 병마용 매표소에서 병마용까지는 약 15분 정도 걸어야 된다. 물론 돈 몇푼 쥐어주면 전동차로 모셔다 주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는 허허벌판격인 경내를 걸어서 갈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들어서자 마자 전시장을 먼저 보고 1호관, 3호관 2호관 순으로 보면 된다. 1호관옆쪽으로 입체영화해주는 영화관이 있는데 보겠다면.....,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2호관은 열지 않았고 1, 3호관만 관람할 수 있었다. 1호관이 메인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것

1984년에 이곳을 방문한 레이건이 방문을 다 마치고 돌아 서면서 한마디 했다고 한다.
Dismiss!!! (해산)


1호관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같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보는쪽에서 왼쪽으로 돌면 된다.

3호관의 모습

다시 1호관
1호관을 보고 3호관을 갔는데 비슷한 모습이다. 힘들게 왔는데 시간을 너무 짧게 본 것 같아 다시 1호관을 찾았다.

이 곳이 1974년 농부가 샘물을 파다가 발견했다는 지점이다. 앞으로 약 5미터만 팠어도 그 때 발견하지 못했을텐데... 그런데 이곳을 발견하고도 한동안 쉬쉬했다고 한다. 당시는 문혁시대(문화혁명)로 봉건적인 사고가 심각하게 배척당하고 있던 터라 쉽게 보고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고향에 내려온 신화사통신 기자 (이름이 뭐였더라 좀 찾아 보고.... 린안온 이라고 함)에 의해서 기사화 되면서 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일전에 방문한 낙양의 용문석굴 또한 문화혁명시대의 참화로 많은 석굴들이 훼손되었는데, 이 병마용은 용케 버텼다. 이 역시 이 무장들의 힘이 커서 그랬나...!

아직 발굴하지 않은 곳이다.발굴하고 있는 사람도 없다. 차근 차근 발굴하여 계속적인 관심과 관광객을 끌어 모으기 위한 전략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차피 앞 쪽에서 본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을 듯......, 세계적인 역사 산물이고 고고학에 있어서 최고중에 하나인 병마용을 무식한 놈이 생각없이 말한다고 할 지 모르지만, 정말 본인에게는 생각했던, 기대했던 것보다는 한참 아래 였다는 점이다.
남들이 다 가는 곳에 가봤으니 방문의 목적은 이뤘다.
진시황릉
먼저
네이버 백과 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동서 485m, 남북 515m, 높이 약 76m이다. 《사기》 <진시황본기(本紀)>에 의하면 시황제 즉위 초부터 착공되어 통일 이후에는 70여만 명이 동원되어 완성되었다고 한다. 내부에는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드는 등 천상과 지상을 모방한 지하 궁전을 만들고 도굴자가 접근하면 화살이 자동발사하는 시설도 갖추었다고 하나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
능은 장방형의 두 겹의 담장으로 싸인 능원의 남쪽에 있으며, 안쪽 담과 바깥 담의 사변 길이는 각각 2,525.4m, 6,294m로, 현재는 지상의 흔적이 없는 부분이 많다. 담벽 아래에서는 도수도(陶水道), 능원 내외에서 3곳의 건축유지와 수많은 배장묘와 순장묘가 발굴되어 전체적인 규모와 구조가 확인되었다. 특히 능원 동문 밖의 거대한 병마용갱은 세계적인 관심거리가 되었고, 능원 밖에서 발견된 100여 개의 형도묘는 건설 당시의 가혹한 강제노역의 실상을 짐작하게 한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06년에 광개토왕릉을 다녀왔었다. 광개토왕릉도 엄청 크다고 생각했었고, 이번 여행에서 간 관림 (관우의 묘)도 크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크기면에서는 진시황릉을 따를 묘가 없어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큰 릉이라고 하니 알만 하다. 릉은 아니지만 같은 성격으로 보면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비교한다면..., 진시황릉이 열 좀 받겠다. 생전에 알았으면 다른 방식으로 더 크게 했을텐데......지금 지하에서 속깨는 타는지도 모를일이다.
이곳 릉도 편안하게 릉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도록 계단을 만들어 뒀다. 광개토왕릉도 계단, 그런데 그곳은 철재계단으로 삐걱 삐걱 거리기는 하지만 계단 만든다고 진시황릉처럼 파헤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진시황릉은 완전히 파서 시멘트로 발라 돌계단을 만들어 놨다. 그 꼭대기에 오르면 죽은자에게 염을 드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올라 오느라 힘들었을 관광객을 위한 음료수 판매대가 위풍 당당하게 설치되어 있다. 광개토왕릉에 철재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해 분노했었는데 진시황릉을 보니 이 사람들 이런쪽은 무개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시황릉 꼭대기를 오를 수 있는 계단


진시황릉 꼭대기

진시황릉 아래 한쪽에서는 이렇게 소원을 비는 곳도 있다. 이 가족의 2008년 소원은 무엇일까?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나도 빌어본다.
이렇게 병마용과 진시황릉을 보고나니 슬슬 배가 고파온다. 우리 가족여행은 '점심은 대충 저녁은 많이' 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다닌다. 점심식사하는데 많은 시간을 뺏기다 보면 정작 낮에 볼 것을 다 못 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 점심은 대충 인스턴트 나 군것질 또는 준비해 간 빵 등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저녁도 호화스럽게 먹느냐? 그렇치도 않다. 다만 충분히 배를 채운다는 정도..., 아무튼 진시황릉을 나오면서 먹음직스럽게 파는 군고구마를 몇개 사들고 (5위엔) 화청지로 이동하면서 먹기 시작........... 그런데 군고구마 반은 버렸다. 냄새에 비해서 맛은 한탱이도 없고 어떤 것은 너무 많이 구웠는지 이미 흐물 흐물해져 먹기도 불편했다. 제기랄 배 채우기는 글렀군................!!!!!
그냥 화청지로 가보자고........그곳에 가면 먹을 것이 있겠지............
서안 민박 안내
밍더먼 위치, 가격 1인당 50원 (식사제공
안됨. 실내 금연, 금주)-식사해드실
수 있슴
연락처 : 029)85403067, 13384987653
- 도우미 민박
나오동난루 위치, 가격 50원(일반실), 60원(가족실), 식사제공됨
연락처 : 029)84684537, 13909203871
- 귀락원 : 동관정지에 위치, 가격 60원(식사제공됨)
연락처 : 029)82587501, 13484628578









